21시간 핏물 빼고 데치고 끓인 진한 국물, 맛-매출 모두 잡아

이은경 | 기사입력 2019/09/04 [08:49]

21시간 핏물 빼고 데치고 끓인 진한 국물, 맛-매출 모두 잡아

이은경 | 입력 : 2019/09/04 [08:49]

[청년사장 전통시장 진출기]<2> ‘두류돼표국밥’ 이대겸 대표

동아일보

야구 선수로 인생의 첫 번째 꿈을 키웠고, 이제는 국밥 전문 식당 사장님으로 청년 창업 성공 모델이 된 ‘두류돼표국밥’ 이대겸 대표는 “야구공을 놓고 오래 방황했을 때 국밥이 내게 힘을 줬던 것을 기억하며 사람들의 삶에 위안을 주는 국밥을 제대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제공


흔히 즐겨 먹는 국밥은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어려운 음식이다. 고기와 뼈를 세심하게 손질해 국물을 내기까지 노하우와 각별한 정성이 필요하다.

1984년 개장한 대구두류종합시장은 한때 대구의 대표 재래시장이었지만, 아무래도 도심에서 떨어져 있다 보니 지금은 사람들의 발길이 줄었다. 그런데도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청년몰 운영 사업을 통해 이곳 시장 상가 내에 뛰어든 ‘두류돼표국밥’ 매출은 갈수록 오르고 있다.

두류돼표국밥 이대겸 대표(38)는 대학 때까지 엘리트 야구 선수였다. 얼마 전 KIA에서 은퇴한 한국 프로야구의 레전드 3루수 이범호와 대구고 동기다. 한라대에 진학해 야구를 계속했지만 프로의 문은 좁았다. 운동을 중도 포기한 여느 선수들처럼 불투명한 미래와 늘 마주치며 오랜 방황을 겪었다. 이 대표는 “군복무를 마친 뒤에 헬스클럽 등에서 돈벌이를 했지만 나 스스로 성장의 벽을 많이 느꼈다”고 했다. 그러다 10년 전, 우연히 한국리더십개발원 홍구조 원장의 강의를 듣고 포기가 아닌 자립의 의지를 다질 수 있었다.

야구 말고도 자신에게 다른 재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이 대표는 2013년 처음으로 음식 장사에 도전했다. 뼈 해장국 식당을 했던 어머니와 택시 기사 아버지에게서 영감을 얻어 대구 달서구 성당동에서 기사 식당을 차렸다. 계산과 서빙을 하다가 가끔씩 갈비나 삼계탕을 만들어보며 요리를 배웠다. 그러나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었다. 이 대표는 “주방 실권을 주방장에게 맡기니 결국 장사의 한계가 오더라. 요리의 재미는 알았지만 2년 동안 실속 없이 손해만 봤다”고 말했다.

이 경험을 밑천 삼아 이 대표는 자신이 재료 선정부터 요리, 메뉴 개발까지 스스로 주도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노하우를 쌓기 위해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도매시장에서 닭도 해체해보고, 소금 공장에서 납품 일도 해봤죠. 그러면서 어떻게 싸고 질 좋은 재료를 구할 수 있는지 알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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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그에게 다시 기회가 왔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청년 창업, 전통시장을 살리다’ 사업을 접한 이 대표는 곧바로 신청을 하고 지원을 받아 대구두류종합시장에서 돼지국밥 식당을 오픈했다. 내가 왜 음식을 해야 하는지 목적부터 분명히 새기고 다졌다. ‘건강한 국밥’을 만들어야겠다는 일념이 있었다.

“처음 1년 동안은 국물 맛이 잘 안 나오더라고요. 스트레스도 받았지만 손님이 남긴 국물을 주방에서 먹어보면서 ‘음식은 매일 점검하면서 잘 만들겠다’는 의지를 다졌죠.”

첫 국밥의 테마는 표고버섯을 넣은 국밥이었다. 그래서 식당 상호에도 ‘돼표(돼지+표고버섯)’가 들어간다. 하지만 맛에 대한 호불호가 엇갈리자 과감하게 돼지 뼈만으로 본연의 맛을 살리는 데 집중했다.

“처음엔 한약재도 같이 넣어 끊였는데, 이제는 뼈만 푸짐하게 넣고 진한 국물 맛을 살립니다. 12시간 핏물을 빼고, 1시간 살짝 데치고, 8시간을 더 끊이죠.”

대표 메뉴인 사골국밥과 해장국밥의 가격을 6500원으로 저렴하게 유지하면서 품질을 계속 높이고 있다. 메인 재료의 맛에 집중하면서 2년 전 개업할 때보다 하루 매출은 10배 이상 많아졌다. 개업 당시에는 하루 5만 원 찍기도 힘들었으나 지금은 하루 50만∼60만 원 정도 나온다. 앞으로 3년 후 목표는 하루 매출 100만 원. 단순히 매출액을 늘리겠다는 것이 아니라 10년 목표를 세우고 실천하는 데 있어서 중간에 지치지 않고 다른 마음이 안 생기도록 전략적으로 다짐한 설계다.

식당 창업을 시작하는 청년들에 대한 책임감도 생겼다. 이 대표는 사단법인 전국청년상인네트워크에서 부대표를 맡고 있다. 이 대표는 “식당을 내려는 청년들은 대부분 1년 안에 자리를 잡아야겠다고 착각을 한다. 가장 중요한 ‘내가 왜 음식 장사를 하는지, 어떤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없다”고 따끔하게 말했다.

이 대표는 매일 야구를 했던 중고교 시절 기억을 떠올리며 180도 다른 인생을 살고 있는 지금에 감사해한다.

“창업, 장사의 본질이 대박은 아닌 것 같아요. 오로지 음식의 맛에만 집중하니 앞으로의 길이 보입니다.”

정도를 걷는 얼론인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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