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는 필요하지만 글쓰기는 안해도 된다 ‘세종의 공부’

오제일 기자 | 기사입력 2013/04/18 [09:43]

독서는 필요하지만 글쓰기는 안해도 된다 ‘세종의 공부’

오제일 기자 | 입력 : 2013/04/18 [09:43]

 
 
 
 
 

또 자녀교육에서 밥상머리 스토리텔링법을 사용했다. 하루 세 끼씩 세자와 수라를 같이하면서 가르쳤다. 또 세자에게 배운 바를 동생들에게 지도하게 했다. 특히 왕자들에게 경쟁체제인 플래툰 시스템 교육을 했다. 후계자인 세자는 물론이고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에게도 정치 외교 교육을 시켜 군왕자질을 갖추게 했다. 이는 훗날 수양대군이 조카인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는 비극의 씨앗이 된다.

친인척 공부를 위해 교양학습기관인 종학을 설치했고, 군사교육을 조선의 임금 중에서 가장 철저하게 시켰다. 세종은 사냥 겸 군사훈련인 강무를 조선 임금 중 가장 많은 27회나 실시했다. 군인들의 강인한 체력과 전투능력 향상을 위해 격구 전용구장을 30개나 건립했다. 그런데 세종의 교육 중 가장 위대한 것은 한글의 창제다. 저자는 이를 교육의 빈부격차를 해소하는 일대 사건으로 설명한다. 익히기 쉬운 한글의 보급은 지식의 대중화 가능성을 의미했다.

지식 향유층인 사대부들에게는 위상이 흔들릴 수도 있는 심각한 문제였다. 최만리 등의 한글 창제 반대에는 지배층의 특권 약화, 기존 사회질서의 흔들림을 우려하는 심리가 숨어 있다. 오랜 시간 공부해야 하는 한문은 지배층만이 향유할 수 있다. 세종이 한글 창제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진행한 것은 지배층의 집단 반발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세종이 지식의 빈부격차, 교육의 불균형을 개선하기 위해 마련한 최고의 정책이 훈민정음 창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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